본문 바로가기
Story

정기검진하니 암이라고 해요!

by 따논당상 2022. 8. 10.
반응형

수술 후 폐기능 회복 훈련용 3단 호흡기   

   

요즘 근무 중에 휴대폰 벨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댄다. 외부에서 걸려온 번호는 아예 무시하는데 오늘따라 같은 부재중 번호가 연이어 떠 귀찮은 마음에 시간 내서 열었더니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계속 울려 댄 것이었다. 통화를 연결해보니  빠른 시일 내로 원장님과 상담받으라는 것이다.

 

나는 2~3개월에 한 번씩 꾸준히 여성호르몬제 처방을 받으려고 갔다가 자궁암과 유방암 정기검진을 받았기에 무심결에 "시간 되면 갈게요"하며 응수했다. 암이 의심된다며 빠른 시일 내에 내원하길 재촉하는 직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들려왔다. 어처구니없는 말을 듣고 휴대폰을 끊자마자 '이게 다 뭔 소리래..'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산부인과에서 이번에는 정기검진 당시 초음파를 할 때 자궁내막이 두꺼워진 것 같다며 원장이 자궁경부도 평소보다 꼼꼼히 체크한 게 기억났다. 그러고는 자궁내막에서 피펫을 이용하며 조직 검사한다며 흔히 해본 적 없는 내막 흡입까지 했던 것까지도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최근에 피로가 잦다는 것 외에 몸에서 반응하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퇴근하고 병원을 찾아갔더니 원장님이 조직검사상 자궁내막암으로 의심되고 심상치 않다며 시간을 두지 말고 바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였다. 요즘 암 걸린 사람도 잘 만 살던데 별 것 아니겠지라는 말로 예사롭게 받아들였다. 순간 스쳐간 정보가 떠올라 로봇수술은 회복도 빠른 데 그런 곳을 알려달라고 했다.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가까운 대학병원을 소개해주셨다. 

 서둘러 집에 돌아가 여기저기 온라인 검색을 하며 자궁내막암에 대한 여러 가지 원인과 증상을 찾아보았다. 가족력 중에 유방암과 자궁암이 있으면 여성호르몬제 처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대장암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검색해보니 유방과 자궁, 대장으로 림프절이 연결되어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암정보를 확인하고 나서 하얗게 질린 낯빛이 되었다. '내가 암이라 전이가 되었다면 도대체 몇 기야!' 하며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런 영향이 있었다면 여성호르몬제를 오래 복용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하며 후회가 밀려왔다. 아뿔싸, 우리 엄마도 대장암 말기로 75세 무렵에 돌아가셨다는 것이 상기되고 "내게도 올 것이 온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죽음이란 먼데 있지 않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폐경기를 지나면서 수면장애로 1~2년을 겪다가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한테 찾아가 사정사정하면서 처방을 요청했으나 원장님은 수년을 다녀도 좀처럼 여성호르몬제를 처방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꾸준히 진찰받으러 다니다가 5년 전 불면증에 시달린 내 퀭한 모습을 보더니 애처로운지 여러 가지 주의 사항 중 여성암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다는 조건으로 처방받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여성호르몬제 리비알 복용 하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잠도 잘 자고 기분도 안정되고 힘들었던 폐경기 증상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가 오래 복용하니 습관성으로 굳어질까 염려가 되어 활동적으로 낮에 일하고 운동하면 수면장애가 없어지려나 하는 마음에 이제 그만 약을 끊어 보려는 시도도 해보았지만 리비알 복약을 중단하면 며칠 못 가서 왠지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되고 감정 기복도 만만치 않았다.  의존도가 높아진 것을 확인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룬 것이 화근이 된 것 같다. 

 수술일자가 결정되면 가족과 지인들에게 알리고 교회에도 알려서 기도 부탁을 하려고 했는데 벌써 남편은 동네방네 여기저기 전화하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었다. 남편 역시 아홉수에 징크스를 안고 39세에 조기에 발견한 위암 수술을 받아 위장의 일부를 절제하고 수술 후 장폐색으로 한동안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땐 아이들이 어려서 하루하루 버텨내기도 힘겨워 울 시간조차 없었고 힘들다는 내색할 여력도 없이 지나간 것 같다. 남편 병간호하랴 집에 가 아이들 돌보랴 엄청나게 힘든 시기를 겪어낸 경험이 있기에 설마 나까지 암이라니.. 하는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해졌다.  지나간 세월은 차치하고라도 '그럼 우리는 부부가 다 암이네'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부모님 모두와  외조모까지 병력이 있는 가족들이 흔치 않을 텐데 우리 가족은 왜 이다지도 기구한 운명 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자식들까지도 암을 대물림할 수 있는 유전인자로 인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암울하기 짝이 없고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낙담이란 토네이도급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만 같았다.

   흔들리는 일상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직장에서 할 일도 태산이고 '내가 없으면 어떡하나'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굴러가겠거니 하는 마음에 우선 서둘러 직장에 병가를 신청하였다. 그런데 만약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할 수 있어 본의 아니게 남은 직원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사직을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이러다가 찰나의 순간을 놓치고  잘못된 판단을 한다면, 자칫 자리보전하고 눕게 될 수도 있는 병마를 매달고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 혼자 힘으로 멘털을 지탱하기 힘들어 주변의 기도 도움을 청하였다. 영적인 싸움도 만만치 않기에 담임목사님의 심방을 받고 끝없이 어둔 터널의 굴레를 끊어내야 하겠다는 각오와 다짐을 다잡았다. 그리고는 내게 닥친 현실과 맞서 싸우려는 투지를 모아 하루하루 신중하고 진지하게 살아내기로 했다. 나의 병은 암종이기에 단순히 자궁적출 수술해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암은 전이라는 여러 가지 변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로봇 수술하려고 잡은 대학병원 예약을 취소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암이 점점 자라 훨씬 더 위험할 공산이 크기에 여기저기 수소문해보니 많은 젊은 의사들에게 존경받는 국립암센터 박상윤 교수님을 이구동성으로 적극 추천해주었다.

nbsp;  국립암센터에서 진료일자를 서둘러 받아내고 임상기록 접수와 안내데스크에 진료의뢰서와 검사결과지를 접수하니 진료비 하이패스 카드를 발급해주면서 2층 산부인과 자궁암 센터로 연결해주었다. 그리고 국민 건강공단에 산정특례 등록이 되어 전체 암 진료비의 5%만 내면 된다고 하였다. 수술 전 검사를 위해 채혈, 소변검사, 심전도, x-ray 등을 하고 주요 예약된 순서에 따라 입원 전에 받아야 할 주요한 영상검사 등을 중간중간에 병원에 내원하여 검사받았다. 며칠 외래로 다니면서 악성 종양의 전이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기 위해  가슴CT와 골반 MRI, PET/CT, 초음파 등의 검사를 하였는데 병원 측 배려가 세심하여 검사할 때마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바로 연결되어 순조롭게 검사를 마쳤다. 

 드디어 기다리던 외래 진료 날 박상윤 교수님 방앞에 대기하고 있으니 한 시간 정도 지나 간호사가 밖으로 나와 나 이름을 호명하였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교수님은 자료를 보신 이후 자궁 내진을 해주셨다. 자궁은 복강경으로 제거하면 되고 수술하고 난이후 조직검사가 나와야 알수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예후가 좋을 수도 있다는 소견을 간결하게 말씀하셨다. 교수님은 다음 주 15일에 수술하자고 하셨다. 조심스레 "더 빨리 입원을 했으면 하는데...."하고 말씀드리자  더 이상은 당길 수 없다 하여 이내 나는 함구하였다.

 

피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오신 분들, 산달이 가까울 정도로 배가 한없이 불러온 할머니들이 다음에 대기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에 얼른 자리를 피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없어 모자를 눌러쓴 수많은 사람들이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서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는 광경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숙연해지게 만들었다. 나 한 사람이라도 교수님을 피곤하게 해선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교수님이 말씀하시면 귀 기울여 듣고 군말 덧붙이지 않고 치료계획에 순순히 따라갔다.

 

   입원 전날 코로나19 PCR 검사를 하고 입원하기로 예약된 날 아침에 그 결과가 음성이란 문자와 함께 입원 당일 접수에 대한 안내 문자를 받았다. 이어서 병원 직원에게서 전화가 와  5인실 배정되었으니 오후 4시 이후에 입원하라는 것이었다. 입원 안내문을 보니 입원 당일 미음이나 흰 죽, 주스만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내용을 무시하고 내일 받는 수술을 잘 버티려면 잘 먹어야 한다는 우려에 든든히 배를 채웠다. 입원한 날 저녁식사에 멀건 죽과 간장이 나와 내일을 버티기 위해 그것도 부지런히 먹어 치웠다. 자궁암병동은 간호. 간병 통합서비스를 받기에 보호자는 출입을 금하여 보호자인 남편은 귀가하였고 밤이 되어 어둑해지니 고난이 시작되었다.

 

간호사가 수술 전 처치를 위해 복부 아랫부분을 제모 연고제를 바르고 닦아냈다. 그리고 나선 장을 비워야 한다며 500ml 장청소 주스를 두 번이나 마시게 하더니 먹는 설사약까지 먹였다. 여전히 배만 부글부글 끓기만 하고 밤 10시가 되어도 변이 안나오니 관장을 하였다. 그런 와중에 수혈을 할 수도 있고 수술 전 처치가 필요하다며 굵은 바늘을 꽂고 수액을 연결하였다. 그리고는 밤새도록 밤 근무 간호사가 배변한 양상을 확인하면서 관장을 해주었다. 

 

당장 배변이 나올 것 같아 부리나케 덜커덕 소리 나는 수액 밀대를 끌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건더기가 안 나올 때까지 거의 5차례나 관장을 한 것 같다. 오늘 병원 지시에 따라먹지 않고 욕심내서 고기랑 나물반찬을 먹은 내 자신이 너무나 한탄스럽고 원망스러웠다. 나 자신한테 생고생하여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에 남아있는 대변이 없고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날이 새도록 꼬박 나한테 매달려 관장을 해주신 간호사를 마주할 낯이 없을 정도로 민망할 지경이었다.

  수술당일 오후 2시경에 갑자기 연락이 와 수술실 앞에서 종일 대기하고 기다리는 남편에게 카톡으로 수술하러 간다고 전달하였다. 이동팀이 와서 휠체어에 태워져 이동하는 중에 남편의 배웅을 받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이름과 수술부위, 수술동의서 등을 확인하고 나니 수술실 문이 열리고 아기를 분만하는 자세로 만들어진 수술대에 올라 앉히더니 수액에 무언가를 주입하면서 "많이 아픕니다. 곧 마취하니 괜찮아집니다"하는 목소리와 함께 곧바로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 "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곧바로 내 의식은 저세상으로 순식간에 가버렸다. 깨어보니 여럿이 이동 침상에서 병실 침상으로 옮겨주는 중이었다. 배가 당기고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아프기 시작하였다. 복강경 수술하면 복부에 가스를 주입하기에 배는 불룩하게 불어나 있고 소변줄과 피주머니 배액관 한 개씩 배에 달고 있었고 구멍이 난 4곳에 거즈가 덮여있었다.

 

아픈 통증은 진통제가 들어가는 수액에 속도조절 펌프 기계가 달려있어 무통 버튼을 누르면 빠른 속도로 진통제가 주입이 되어 통증이 가라앉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픈 것을 조절하려고 무통 버튼을 누르면 속이 너무나 메슥거려 토할 것 같은 오심 증상에 시달린다. 이런 게 훨씬 참아내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워 웬만하면 무통 버튼을 안 누르고 펌프 기계에 고정된 속도에 맞추었다.

 

 담당 직원이 와서 혈전을 예방한다고 하면서  펌프 기계를 설치하여 두 다리에 커프를 감아주니 자동으로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는 폐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심호흡과 기침을 하라고 주문하더니  3단 호흡기를 가져다주고는 호기와 흡기를 반복해서 하도록 하여 이번에는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매일 빠짐없이 진통제와 항생제, 객담제 주사를 맞고 제산제도 먹고, 매일 피를 뽑아가는데 군말없이 굵은 혈관위치를 근무시간이 바뀌는 간호사에게 찾기 쉽도록 매번 알려주었다.

 

게다가 예방주사 맞는 팔 부위에 양측을 번갈아가며 아침마다 혈전 방지를 위한 아픈 주사를 맞는 데 주사 맞은 자리가 시퍼렇게 멍들지만 그냥 눈한번 질끈감고 "수고하셨습니다." 하며 매번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담당 간호사는 하루에 4차례 이상 혈압과 체온 등을 체크하고 피주머니에 나온 배액을 빼주고 주사와 약을 주느라 쉴새가 없는 것 같다. 입원한 지 3일이 되니 병실에서 수액 밀대를 끌 때 나는 바퀴소리,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소리, 혈전 방지용 펌프 기계 소리 등 귀에 거슬려 낮이고 밤이고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어 힘들었다.

 

그러나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통증과 오심 증상으로 힘겹게 사투를 벌이는 분들이 옆 침상에 계시니 잠을 못 잔다는 투정을 부린다면 양심이 마비된 사람이 될 것 같아 숨죽이며 하루하루 감내하였다. 그리고는 병실에 함께한 분들이 쾌유하시길 마음속으로 기도하였다. 내 침상은 안쪽이지만 창가 침상에 계신 분이 창문 열어 들어오는 자연바람이 좋다는 분의 뜻을 따라 무더운 7월에 에어컨을 끈 채로 수건을 목에 두르고 땀을 닦아내며 묵묵히 버텨냈다.

 

 다음 날은 조금 나아져 수술한 지 하룻만에 좀 뻐근하고 성가신 소변줄을 빼니 한결 편해졌다. 그런데 두 번째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간호사가 말하길 요의를 느끼고 24시간 내에 500ml 이상 배뇨해야 한다고 한다.  자궁 부위와 부속기, 림프절을 절제하면 방광이나 뇨관의 손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 배뇨량에 목숨 걸만큼 수시로  "몇 cc 나왔나요? 요의가 있나요? 소변을 봐야 해요." 하면서 수시로 체크하고 채근하였다.

 

간호사는 내가 본 소변기에 담긴 소변량을 체크하며 좀 더 소변을 보셔야 한다고 미션을 수행하라는 압박을 준다. 밤이 새도록 아픈 배를 움켜쥐고 힘겹게 수액 밀대를 밀면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살면서 이날 밤만큼 피, 땀, 눈물 나게 힘쓰고 애쓴 적이 없는 것 같다.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틀기도 하고 물을 질리도록 먹어대도 소변이 나오지 않아 끙끙대다가 간신히 50cc가 나와 안도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브레더 스캐너를 가져와서 방광에 잔뇨량 측정을 하더니 더 많이 나와야한다고 조급증을 내었다. 차츰 소변양이 늘어나  300cc까지 나와  소변기를 들고가 보여주니 간호사가 재차 방광측정기로 아랫배에 확인하고 나서 그제야 오케이 할 때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모를 정도였다.

초음파 방광잔뇨량 측정기(브래더스캔)

 많이 걸으라고 해서 수술한 날부터 아파도 병실에서부터 조금씩 걸었으나 가스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미음이랑 사과주스가 나와 먹어보려 했으나  배가 아프고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숨쉬기가 힘들어 만사가 귀찮아 입도 열기가 싫었다. 며칠이 지나니 복도를 걷기 시작하면서 차츰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다가  전에 먹다 못 먹은 주스들까지 다 마셨다.

 

식욕이 좋아지면서 병원에서 매끼 나오는 식사량이 절반은 먹을 정도가 되었다. 늘 사람들이 오가며 분주하기만 하던 병원이 주말에는 한적하여 면회실에 식구들이 면회를 왔다. 가족들과 맘껏 담소를 하니 생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5일째 되는 아침에 박교수 님이 회진을 돌면서 초기 암이라 내일 퇴원하시면 된다고 하였다. 퇴원 당일에는 배액 피주머니는 제거하고 실밥은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퇴원하였다. 퇴원 다음날부터 집에서 배에 봉합부위를 소독하는 법을 설명해주는 안내문대로 소독하였다. 수술한 부위에서 떼어낸 조직검사 결과가 퇴원 후 7일째 되는 날이다.  퇴원하고 수술 부위 상처로 제대로 씻지 못하는 것은 아랑곳없고 그야말로 결과를 기다리는 7일 동안은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그 예약된 날까지 무심한 척하였지만 당일 외래 진료 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은 전이가 있냐 없냐에 따라 달라지는 살생부에 내 이름이 들었나를 발표하는 순간처럼 가슴이 짓 눌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외래 진료실에 들어가니 봉합부위 실밥을 제거하고 최종 조직검사 결과를 말해주었다.

 

박상윤 교수님은 전이가 없는 자궁내막암 초기이니 수술 후 추가 처치할 것은 없다고 하셨다. 추적 관찰하기 위해 3개월마다 정기검진만 받으라는 말에 깊은 수심이 한가득한 내 낯빛이 순식간에 환해져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반응형

댓글